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한 명인 마르그리트 유르세나르는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선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문학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역사, 고통과 윤리, 그리고 삶의 의미를 천착해온 작가입니다. 유르세나르는 1980년 프랑스 아카데미의 첫 여성 회원으로 등극하면서 여성 작가의 위상을 한층 높였으며, 이는 그녀가 지닌 문학적 깊이와 사상적 무게가 프랑스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녀의 대표작과 문학 세계, 그리고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그녀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마르그리트 유르세나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닙니다. 이 책은 고대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철학적 명상에 잠기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유르세나르는 이 소설을 통해 권력이라는 절대적인 위치에 오른 인간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고독과 죽음을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묵직하게 그려냅니다.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통치자였지만, 죽음을 앞두고 육체의 한계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는 신처럼 군림했으나,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공허에 맞섭니다. 유르세나르는 고대의 황제를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을 투영합니다. 권력과 성취 뒤에 남겨지는 허무함,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상실감, 삶의 끝을 직시해야 하는 인간의 조건 등이 작품 전반에 스며들어 있으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철학적 사유를 선사합니다.
『오푸스 니그룸』
『오푸스 니그룸』은 유르세나르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연금술사 제노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연금술이나 역사적 맥락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과 그에 따르는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제노는 신에 대한 믿음과 과학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자유사상가이자 과학자였지만, 그 자유로움은 오히려 사회와의 충돌을 불러오고, 그의 삶에 고통을 안겨줍니다. 유르세나르는 제노를 통해 인간이 진리를 향해 나아갈 때 겪는 윤리적, 종교적, 존재론적 고뇌를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이 작품은 단지 중세의 한 인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왜 그것을 믿는가?"라는 질문은 유르세나르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화두입니다. 제노의 삶은 진리 탐구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것이 동반하는 고통을 상징하며, 유르세나르는 이 양면성을 매우 치열하게 풀어냅니다.
문학, 철학, 여성성
마르그리트 유르세나르는 단지 뛰어난 문학가로 기억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는 철학자이며 동시에 시대의 사상가였습니다. 특히 그녀가 보여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태도는 현대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혔고, 오랜 시간 미국에서 여성 연인 그레이스 프릭과 함께 살며 지적 파트너십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그녀의 삶과 문학 모두에서 깊은 독립성과 사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르세나르는 문학을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으며, 특히 여성으로서 사회적 틀과 제약을 뛰어넘는 글쓰기를 해냈습니다. 그녀는 여성주의적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문학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주체성과 인간성의 통합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작품 속 여성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깊은 존재적 사유를 하는 인물들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학적 자산입니다.
마르그리트 유르세나르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역사적 인물을 빌려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으며, 자신의 삶을 통해 자유와 지성,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그녀의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사유의 장입니다. 오늘날, 유르세나르의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권력과 고독, 진리와 신념, 성과 사랑이라는 주제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문학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유의 여정입니다. 그녀는 문학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마르그리트 유르세나르는 오늘날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삶은 질문이고, 문학은 그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응답이다." 그녀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지하게 삶을 바라보려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도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