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서울의 5대 궁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by 스토리부자2400 2023. 7. 6.
반응형

경복궁

서울은 고대의 전통과 현대의 경이로움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매혹적인 도시입니다. 서울이 제공하는 수많은 명소 중 다섯 개의 궁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의 5대 궁궐 경복궁, 창덕궁과 창경궁, 덕수궁과 경희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웅장한 건축물은 도시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의 5대 궁궐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시대를 들여다보는 창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에 발을 딛는 순간 조선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1395년에 지어진 이 웅장한 궁전 단지는 주요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으로,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되었습니다. 고종 년간 경복궁 중건 시 궁성이 새 단장을 하게 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앞부분이 헐려 나가고 또 한국전쟁 때 파손되었습니다. 현재의 궁성은 그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것이고, 일부는 본래 위치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상태입니다. 현재의 궁성은 그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것이고 일부는 본래 위치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상태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 안으로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화려한 문을 거닐다 보면 그 엄청난 규모와 건축학적 광체에 압도될 것입니다. 경복궁은 왕실의 의례가 거행되었던 왕좌의 전당인 근정전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궁궐 안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을 둘러보며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느껴 보세요. 도성과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인 수문장, 수문장의 교대 의식이 하루에 여러 번 진행되니 놓치지 말고 꼭 보시길 바랍니다.

창덕궁과 창경궁

울창한 녹지에 자리 잡은 창덕궁은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으로 유명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창덕궁은 북악사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입니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습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증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입니다. 궁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넓게 펼쳐져 있는 숨이 멎을 정도로 그림 같은 풍경인 정원입니다. 세심하게 디자인된 정원을 거닐다 보면 연꽃 연못, 정자, 고목을 만나게 됩니다. 역사가 깊은 창경궁은 웅장한 궁궐에 비해 조용하고 친밀한 경험을 제공하는 숨겨진 보석입니다. 원래 15세기에 건축된 이 궁전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번의 개조와 변형을 거쳤습니다. 궁궐의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모두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림 같은 옥천교를 따라 거닐고, 왕들이 중요한 회의를 열던 명정전과 같은 왕궁을 둘러보세요. 창경궁은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전통과 현대미술이 혼합된 전시를 제공합니다. 고요한 비원(왕실 온실)을 방문하여 계절별 꽃의 생생한 색상을 즐기는 것을 잊지 마세요.

덕수궁과 경희궁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후 덕수궁이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없습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습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서울시에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의 왕조사가 고스란히 담긴 5대 궁궐, 잊고 있던 역사를 찾아서도 좋고, 각자의 의미를 담아 방문해도 좋을 서울의 5대 궁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입니다. 다소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응형